고령화 사회
대한민국에서 젊은이로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집으로 퇴근한다
집은 회사에서 1시간30분 가량 떨어져 있다
지하철을 타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사람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지친 몸은 더욱 녹초가 된다.
간신히 자리가 나서 그 자리에 앉으려면 그처럼 지친 사람들이 서로 앉으려고 눈치를 본다. 다들 내색은 안하려고 하지만 얼굴에 피로가 역력하다.
그렇게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종점에 다가갈수록 생겨나는 자리를 하나둘 찾아 앉는다. 그도 간신히 자리에 앉는다. 달콤하다. 잠이 온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역에서 한 노인이 탄다.
경로석이 저쪽에 있지만 이미 노인들로 만원이다.
그 노인은 당당히 그가 앉은 자리 앞에 선다.
눈치를 준다
'고얀놈. 젊은 놈이 자리 안 비키고 뭐해?'
고민이 된다.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야 겠지만, 노인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하루종일 일하다 지친 그와 매일 할일없이 노느라 쌩쌩한 노인중 누가 더 자리에 앉아야 할까?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해야 할까?
결국 그는 자리를 양보하지만 내키지 않는 것이 표정에 드러난다.
노인은 형식적인 사양을 하다 자리에 앉는다
젊은이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고 매일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사는 곳은 바로 그런 곳이다.
이 곳의 인구는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서울에서 탄 지하철이 종점갈때까지 노인들로 북적인다.
한마디로 달리는 노인정이다.
그러나, 이 곳은 다른 곳과는 좀 더 다르다.
다른 곳의 사람들이 인생을 얼마나 도전적이고 보람있게 살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편안하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후에 죽을 지를 고민한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노후를 보낸다는 것은 죽을때까지 편하게 지낸다는 것, 다시말하면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다. 그들에겐 야망이나 도전같은 단어는 의미가 없다.
이들은 퇴직금으로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죽을때까지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먹는 장사를 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주방장을 고용해 장사하면 본전치기는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온 동네가 다 식당이다. 그 식당도 개성이 있는 식당이 아니라, 다 똑같은 메뉴에 똑같은 품질의 음식들이다. 맛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 내가며 사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음식을 파는 것은 아닌 식당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식당들이 문을 닫는다. 그리고 새로운 노인이 식당을 연다.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 없다. 그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바로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다.
이곳은 죽음의 도시이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의 90%가 노인이다.
30대 후반인 그가 어려보이는 것은 이 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쩌다 마주친 어린아이가 신기해 보인다.
그 아이가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말한다.
'나 친구하고 놀고 싶어.'
그러나 그 아이의 바램을 이루어주기 어렵다는 것은 그 아이의 할머니도,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에 활력이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죽을 날이 막연히 두려워, 많이 일하지 않아도 생계를 해결해 줄 일거리를 찾는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같은 종류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매일 문을 연다. 치킨, 분식, 피자등등. 그리고 그 메뉴도 한결같이 똑같다. 식당을 열면 비슷한 인테리어에, 비슷한 광고 전단에, 비슷한 메뉴에, 그런 가게가 매일 문을 열고 얼마 안되어 문을 닫는다. 매일 상조회사 직원들만, 119직원들만 바쁘게 오간다.
지하철을 타면 90%가 노인이다. 경로석 따위는 이미 가득찬지 오래다. 어쩌다 탄 젊은이들은 아예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깐 앉았다가도 곧 승차하는 노인들이 그 젊은이 앞에 서서 자리를 내놓으라는 눈짓을 하기 때문이다. 그 눈짓은 주변 사람 모두의 눈짓으로 변해 정작 출퇴근으로 피곤한 젊은이는 자리를 뺏기고 할일없이 지하철의 무임승차만 하는 노인들은 앉아서 간다. 심지어는 노인들끼리 자리다툼을 한다. 80먹은 노인이 70먹은 노인에게 노인을 공경하라고 말싸움을 한다. 젊은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들을 바라본다.
머리에 염색을 하고 성형수술로 주름을 편 노인들은 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에이리언이 지구인으로 어색하게 변장이라도 한듯 주름진 노인의 손을 가진 팽팽한 얼굴의 노인은 흉칙해 보인다. 그 위에 색조화장이라도 한 할머니는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길을 걸을땐 온 힘을 다해서 허리를 펴고 걷지만 지하철에 타자마자 허리를 굽히고 노인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고 난 후에는 다시 씩씩한 노인으로 변한다.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그러나 늙은 몸으로서 누려야 할 사회적 대접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다. 노인으로서 대접받고 싶지만 노인은 아닌 노인들. 오늘도 그들은 마치 좀비처럼 이 도시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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